서류에 도장을 찍고 며칠이 지나서야 알아차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목이 여전히 끝까지 돌아가지 않고, 아침마다 손이 저리고,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제야 보험사에 다시 연락해도 돌아오는 답은 대체로 같습니다. 이미 지급동의서에 서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급동의서는 어떤 서류인가요
지급동의서, 면책동의서라는 이름으로 옵니다. 이 금액을 받고 이 사고에 대한 청구를 마무리한다는 뜻의 문서입니다. 서명하면 그 뒤에 증상이 나빠져도 추가 청구는 원칙적으로 어렵습니다.
보상금이 어떤 항목으로 계산되는지는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항목이 아니라 시점입니다. 같은 사고라도 언제 서명하느냐에 따라 계산에 들어가는 항목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후유장해 항목이 그렇습니다. 장해가 남으면 상실수익액과 후유장해 위자료가 새로 생기는데, 평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서명하면 이 항목들이 계산되지 않은 채 마무리됩니다. 부상 항목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평가할 수 있는 시점이 정해져 있습니다
후유장해는 아무 때나 평가하지 않습니다. 골절이나 인대 손상은 상해를 입은 날로부터 180일, 수술을 받았다면 수술일로부터 180일이 지난 후에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 받은 평가는 인정에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험사에서 정리하자는 연락이 오는 시점은 대개 이보다 이릅니다. 치료가 일단락되면 서류를 정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서명하면 180일이 지나기 전에 사건이 끝납니다.
서명을 후회하시는 세 가지 경우
1. 치료가 끝나지 않았는데 서명한 경우 통증이 남아 있는데 서류부터 정리하는 경우입니다. 서명한 뒤에 증상이 나빠져도 추가 청구는 원칙적으로 어렵습니다.
2. 후유장해 평가를 받지 않고 서명한 경우 장해로 남을 상태인지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본인이 판단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평가부터 받아보지 않고 도장을 찍는 것, 저희가 상담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후회가 여기입니다.
3. 항목별 내역을 보지 않고 서명한 경우 제시액은 대개 총액 하나로 옵니다. 어느 항목이 얼마로 잡혔고 무엇이 계산되지 않았는지는 총액만 보아서는 알 수 없습니다.
| 확인 항목 | 서명 전 검토 없이 | 서명 전 검토 후 |
|---|---|---|
| 치료 종결 여부 | 증상이 남은 상태에서 마무리 | 증상 고정 시점을 확인하고 진행 |
| 후유장해 | 평가 없이 제외 | 180일 이후 평가해 산정에 반영 |
| 항목별 내역 | 총액만 보고 판단 | 계산되지 않은 항목을 확인 |
| 이후 청구 | 원칙적으로 어려움 | 근거를 갖춘 상태에서 결정 |
서명한 뒤에도 길이 있는 경우
원칙은 분명합니다. 일정 금액을 받고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기로 한 뒤에는 그 이상의 손해가 생겼다고 다시 청구할 수 없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예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합의가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후발손해가 합의 당시의 사정으로 보아 예상이 불가능한 것으로서, 당사자가 후발손해를 예상하였더라면 사회통념상 그 합의금액으로는 화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할 만큼 그 손해가 중대한 것일 때에는 당사자의 의사가 이러한 손해에 대해서까지 그 배상청구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다시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대법원 2001년 9월 14일 선고 99다42797 판결입니다. 세 가지가 모두 갖춰져야 합니다. 손해 범위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 뒤에 나타난 손해가 그때로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일 것, 그리고 그 손해가 중대할 것입니다.
쉽게 인정되는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니 서명 전에 확인하는 것이 먼저이고, 이미 서명하셨다면 이 요건에 해당하는 사정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다음입니다.
시점부터 판단합니다
저희는 제시액을 먼저 보지 않습니다. 지금이 서명할 때인지부터 봅니다.
치료 경과를 보고 증상이 고정된 상태인지 확인합니다. 상해일과 수술일을 기준으로 180일이 지났는지, 후유장해가 남을 상태로 보이는지를 의무기록과 영상자료로 판단합니다.
아직 이르다면 언제 무엇을 준비해서 평가받을지 일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서류를 다시 떼고 병원을 한 번 더 다녀오는 동안 몇 주가 더 갑니다. 번거롭지만 그 기간이 계산에 들어갈 항목을 정합니다.
시점이 맞다면 그때 내역서를 봅니다. 항목별로 계산됐는지, 소득이 어느 기간의 어느 자료로 산정됐는지, 과실비율과 동승자 감액이 어떻게 적용됐는지를 확인합니다.
치료를 스스로 끝내고 서명한 경우
가장 자주 보는 유형입니다. 통증이 남아 있는데도 더 나빠지지는 않겠다고 스스로 판단해 치료를 끝내고, 안내받은 금액에 서명합니다. 몇 달 뒤 증상이 그대로인 것을 알게 되지만 그때는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서명 전에 서류를 들고 오시는 분들은 순서가 다릅니다. 치료가 어느 단계인지, 평가를 받아볼 시점인지, 내역에서 계산되지 않은 항목이 무엇인지가 먼저 정리되고, 그 뒤에 서명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특정 사례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으로 설명드렸습니다.)
서명 전에 확인해보실 것들
- 아직 치료 중인데 이제 마무리하자는 연락을 받고 있다
- 상해일 또는 수술일로부터 180일이 지나지 않았다
- 후유장해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 총액만 안내받고 항목별 내역서를 받지 못했다
- 지급동의서라는 서류를 받았는데 무슨 문서인지 정확히 모른다
해당되는 사유가 있다면 서명 전에 지금이 서명할 때인지부터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치며
지급동의서에서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시점입니다. 언제 서명하느냐가 계산에 들어갈 항목을 정하고, 항목이 정해지면 금액은 그 뒤에 따라옵니다.
다치신 분에게 필요한 일은 저희가 빠짐없이 챙깁니다. 진단서와 의무기록, 보험사 산정 내역을 약관 기준과 대조하는 일도, 부족한 자료가 무엇인지 안내하는 일도, 유리한 판례와 분쟁조정사례를 근거로 제시하는 일도, 제3병원 자문과 법률자문이 필요한지 검토하는 일도 끝까지 처리합니다. 저희 손이 닿지 않는 곳은 단 하나, 보험사가 끝내 지급을 거부하는 순간뿐입니다. 그 마지막 벽 앞까지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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